작성일 : 17-03-06 13:18
연개소문은 고구려 무장들의 최고봉이었다
 글쓴이 : 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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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古朝鮮)의 고신도(古神道)가 고구려 때에는 ‘조의선인(?衣仙人)’으로 맥을 이었다.

고구려의 국상(國相) 을파소(乙巴素)는 나이 어린 준걸들을 뽑아서 ‘선인도랑(仙人道郞)’이라고 하였으며, 교화(敎化)를 관장함을 ‘참전(參佺)’이라 하고, 무예(武藝)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衣)’라 하였다.

< 해상잡록(海上雜錄)>에 ‘연개소문은 조의선인 출신’이라고 하였다. (明臨答夫 蓋蘇文 此皆?衣仙人出身.)

조의선인(?衣仙人)이라 함은, 선인(仙人)들이 주로 검은 옷을 입고 다녔으므로 ‘조의(?衣)를 입은 선인(仙人)’이라는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연개소문(??666)은 모습이 웅장하고 의기가 호걸스러웠으며, 소년시절에 벌써 웅지를 품고 당나라에 들어가 지형과 문물 풍토를 관찰하였으며, 당태종 이세민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후에 장성하여 안시성 전투에서 이세민의 당나라 군사를 궤멸시키는 대승리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송나라의 왕 신종(神宗)은 측근 신하인 왕안석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쳤는데, 어찌하여 이기지 못했는가?”
그러자 왕안석이 대답하였다.
“연개소문은 비상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렇듯 조의선인(?衣仙人) 출신인 연개소문은 고구려 국상(國相)인 막리지(莫離支)가 되어, 전국의 병마(兵馬)와 재정의 권한을 총괄하였다. 몸에는 5개의 칼을 차고, 나가 다닐 때는 군사를 거느리니, 그 위엄과 용맹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 몸에 5개의 칼을 차고 전장에서 활약하는모습을 본 중국 한족들은 아직도 경극에서 그를 전쟁의 신 비슷하게 묘사고있습니다

* 참고로 을지문덕도 조의선인 출신이라고합니다